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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나인(99.99%) 금이 쓰리나인(99.9%)보다 더 비싸게 팔린다고 알고 계셨나요? 제가 금은방에서 직접 물어봤더니, 되팔 때는 어차피 같은 값을 쳐준다고 하더군요. 세계 중앙은행들도 지금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순수한 금이냐보다, 어디에 두고 누가 통제하느냐가 훨씬 중요해진 세상이 됐습니다.

지정학 리스크가 바꾼 금 보관의 공식
오랫동안 세계 중앙은행들은 금을 뉴욕 연방준비은행에 맡기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세계 최대 금융 시장이고, 거래 상대방도 넘치니 필요할 때 바로 쓸 수 있다는 논리였죠. 그런데 2022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미국과 유럽이 러시아 중앙은행의 해외 외환보유액 약 3,000억 달러를 동결시켜버린 겁니다. 여기서 외환보유액이란 국가가 위기 상황에 대비해 쌓아두는 비상금으로, 달러·유로 채권 같은 자산이 주를 이룹니다. 그런데 이 비상금이 해외 금융 기관 안에 있으면, 제재 한 방에 손도 못 대게 될 수 있다는 사실이 현실로 확인된 거죠.
국가 명의로 쌓아놓은 돈이라도 타국 시스템 안에 있으면 그냥 묶일 수 있다는 걸 그때서야 실감했습니다. 이 사건 이후, 중앙은행들 사이에서는 "금을 어디에 두느냐"가 "얼마나 가지고 있느냐"만큼 중요한 문제가 됐습니다.
여기에 스위프트(SWIFT) 제재도 겹쳤습니다. SWIFT란 전 세계 은행들이 국제 송금 지시를 주고받는 표준 금융 통신망입니다. 이 망에서 쫓겨나면 국제 결제가 극도로 번거로워집니다. 실물 금은 이런 시스템 바깥에 존재한다는 점에서 전혀 다른 위상을 갖습니다. 특정 국가가 발행하거나 운영하는 금융 인프라에 의존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 네덜란드 중앙은행: 2025년 3월~8월, 뉴욕·오타와 보관 금 86톤을 영란은행(런던)으로 이전. 뉴욕 보관 비중 31.3% → 18.5%로 축소
- 프랑스 중앙은행: 뉴욕에 있던 비표준 금괴 129톤 매각 후, 유럽 시장에서 최신 규격 금괴로 재매입하여 파리 보관 (2025년 7월~2026년 1월, 26차례 진행)
- 독일: 전체 보유량 약 3,350톤 중 약 37%가 여전히 뉴욕 연방준비은행에 보관 중이며, 자국 환수 논쟁이 의회에서 재점화
중앙은행들이 금을 사는 진짜 이유
세계금협회(World Gold Council)가 2026년 2월부터 5월까지 전 세계 76개 중앙은행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실시했습니다(출처: 세계금협회(World Gold Council)). 결과가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앞으로 12개월 내 세계 중앙은행 전체의 금 보유량이 늘어날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 89%가 그렇다고 답했습니다. 전년도 81%에서 크게 오른 수치입니다. 또한 실제로 금을 보유하고 있다고 답한 중앙은행 비율도 전년 81%에서 93%로 뛰어올랐습니다.
숫자로만 보면 감이 잘 안 오실 수 있는데, 실제 매입 규모를 보면 체감이 됩니다. 2010년에 세계 중앙은행들의 연간 순매입량은 100톤도 안 됐습니다. 2022년에는 그게 1,000톤을 넘어섰고, 2023년·2024년에도 연간 1,000톤 이상의 매입이 이어졌습니다. 2025년에는 금값이 사상 최고 수준인데도 850톤대 매입이 계속됐습니다. 가격이 아무리 올라도 계속 샀다는 뜻이죠.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일반적으로 "싸게 사서 비싸게 판다"는 투자 원칙에 비춰보면, 사상 최고가에 계속 매입하는 건 이상하게 보입니다. 하지만 중앙은행 입장에서 금은 수익률 자산이 아니라 준비 자산의 성격에 가깝습니다. 달러 자산에 치중된 포트폴리오를 분산하고, 제재 리스크를 줄이며, 지정학적 충격을 흡수하는 완충재 역할을 하는 겁니다.
이 흐름과 함께 달러의 외환보유액 비중은 꾸준히 줄고 있습니다. 국제통화기금(IMF) 데이터에 따르면, 1999년 세계 외환보유액에서 달러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71%였지만, 2026년 1분기에는 약 57% 수준까지 낮아졌습니다(출처: IMF COFER 데이터). 달러가 당장 무너진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의존도를 조금씩 낮추는 탈달러화(de-dollarization) 흐름의 일환으로 금 매입이 늘어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탈달러화란 외환보유액에서 달러 자산의 비중을 점진적으로 줄여가는 현상을 말합니다.
폴란드가 2025년 중앙은행 금 순매입 세계 1위를 기록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가 됩니다. 러시아 위협이 커지면 국가 신용과 외국인 투자에 직격탄이 될 수 있으니, 금을 안전판으로 쌓아두는 겁니다. 순매입 규모가 약 100톤으로 2위권인 카자흐스탄(약 50톤)의 두 배에 달했습니다.
금테크 실전: 순도보다 공임이 먼저입니다
세계 중앙은행들이 금 규격을 재정비하는 움직임은 개인 금테크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습니다. 국제 금시장에서 통용되는 대형 금괴 기준은 무게 350~430트로이온스(약 10.9~13.4kg), 순도 99.5% 이상입니다. 프랑스가 뉴욕에 있던 오래된 금괴를 매각하고 최신 규격으로 재매입한 것도 유동성을 높이기 위한 선택이었습니다. 팔기 쉬운 금이 결국 진짜 자산이라는 원칙은 국가든 개인이든 다르지 않습니다.
제가 직접 금은방에서 금을 알아보니, 이 원칙이 더 피부에 와 닿았습니다. 장신구 목적이 아니라면 공임이 적은 형태, 그러니까 골드바나 콩알·쌀알 모양 덩어리금을 사는 게 훨씬 낫습니다. 2026년 9월 5일 기준으로 순금 1돈(3.75g)의 시세는 살 때 약 85만 원, 팔 때 약 71만 5천 원 수준입니다. 이 스프레드(매수-매도 가격 차)가 처음부터 손실로 시작하는 구간이기 때문에, 공임 손실까지 더 얹으면 공임 차이에 따라서 손실이 더 커집니다.
포나인(99.99%) 순금에 대해서도 한마디 드리고 싶습니다. 일반적으로 포나인이 쓰리나인(99.9%)보다 더 가치 있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LS나 고려아연 같은 공인 업체의 1kg짜리 포나인 골드바는 제품 자체로는 포나인이 맞습니다. 그런데 이걸 잘라서 작은 덩어리로 만들거나 녹여 다른 형태로 가공하는 순간 쓰리나인 제품이 됩니다. 더 결정적인 건, 팔 때 포나인이라고 더 쳐주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되팔 때는 쓰리나인과 동일한 시세를 적용받습니다. 그러니 살 때 포나인에 집착해서 프리미엄을 더 낼 이유가 없습니다.
공임 손실도 마찬가지입니다. 반지나 팔찌로 제작하면 업체에서 공정 로스 3~5%를 사전 고지하는데, 실제로 완성품 무게를 재보면 3.6~3.65g 정도로 줄어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금테크 목적이라면 이 손실을 처음부터 최소화하는 형태를 고르는 것이 핵심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포나인 금이 쓰리나인보다 비싸게 팔리나요?
A. 일반적으로 포나인이 더 좋다고 알려져 있지만, 되팔 때는 쓰리나인과 동일한 시세를 적용받습니다. 가공 과정에서 이미 포나인 기준이 깨지는 경우도 많아서, 처음 살 때 포나인 프리미엄을 추가로 지불할 실익이 없습니다.
Q. 중앙은행들이 금을 자국으로 옮기는 이유가 뭔가요?
A. 2022년 러시아 외환보유액 동결 사태가 결정적 계기였습니다. 해외에 보관된 자산은 지정학적 갈등이 생겼을 때 제재로 동결될 수 있다는 게 현실로 확인됐기 때문에, 실물 금을 자국 내에 직접 보관하려는 움직임이 강해졌습니다. 네덜란드와 프랑스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Q. 위기 때 금값이 오히려 떨어진다는 말이 사실인가요?
A. 사실입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금값이 약 23%, 2020년 코로나 쇼크 초기에는 약 12% 급락했습니다. 금융 기관과 투자자들이 당장 쓸 달러 현금이 부족해지면 금을 팔아서라도 유동성을 확보하기 때문입니다. 금은 장기 보험이지, 단기 위기의 완벽한 방패는 아닙니다.
Q. 금 살 때 골드바랑 금반지 중 뭐가 더 유리한가요?
A. 금테크 목적이라면 골드바나 덩어리 형태가 훨씬 유리합니다. 반지나 팔찌는 공정 로스(3~5%)가 발생해 실제 무게가 줄어든 상태로 완성됩니다. 팔 때 이 손실분은 돌려받지 못하기 때문에, 처음부터 공임이 거의 없는 형태를 선택하는 게 실질 수익률에 유리합니다.
Q. 앞으로 금값이 계속 오를까요?
A. 월가 주요 투자은행들의 12개월 목표가를 보면 JP모건 6,000달러, 모건스탠리 5,200달러, 골드만삭스 4,900달러 수준입니다(2025년 기준 금값 약 4,500달러대). 중앙은행 수요, 지정학 리스크, 달러 의존도 축소 흐름이 구조적으로 이어지고 있어 강세 전망이 우세하지만, AI 붐으로 주식 시장에 자금이 몰릴 경우 단기 조정 가능성은 열어둬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결론
제가 금은방에서 금값을 알아보며 배운 것과, 세계 중앙은행들이 수백 톤 단위의 금을 옮기면서 배우고 있는 것이 결국 같은 교훈을 가리킨다고 생각합니다. 얼마나 순수한 금이냐보다, 내가 실제로 통제할 수 있고 필요할 때 쓸 수 있는 형태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금의 성격 자체가 달라지고 있습니다. 수동적 준비 자산에서 지정학적 리스크와 금융 제재에 대응하는 전략적 안보 자산으로 위상이 확장되고 있는 겁니다. 개인 금테크도 이 흐름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포나인 순도에 집착하기보다, 공임 손실을 줄이고 유동성이 좋은 형태로 보유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더 합리적인 선택일 가능성이 높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