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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걷다 폐지를 끄는 어르신을 마주칠 때마다 저는 눈을 오래 못 마주칩니다. 10년 뒤 제 모습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니까요. IMF 직격탄을 맞고 이직을 반복하며 뚜렷한 경력 한 줄 없이 달려온 문과 출신 오십 대에게 노후 준비는 한숨부터 나오는 주제입니다. 그래도 오늘 정리한 이 내용이, 저처럼 막막한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실마리가 되길 바랍니다.

노후 파산을 막는 네 가지 조건
노후 파산(老後破産)이라는 말이 일본에서 먼저 퍼졌을 때 남 이야기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가만 따져보면 일본의 사례가 우리 현실과 꽤 겹칩니다. 일본 후생연금, 우리로 치면 국민연금에 해당하는 공적 연금 혜택을 충분히 받지 못한 사람, 중대한 질병을 앓은 사람, 집이 없는 사람, 노후 자산을 자녀에게 통째로 넘겨버린 사람. 이 네 유형이 가장 가난한 노후를 맞이했다는 분석이 있습니다(출처: 국민연금공단).
저는 이 네 가지를 보면서 '이 중 몇 개나 해당하나' 손가락을 꼽아봤습니다. 집은 있고, 큰 병은 아직 없고, 자녀에게 자산을 넘길 여유도 없으니 어쩌면 다행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국민연금 납입 기간이 짧다는 건 걱정입니다. 공적 연금(公的年金)이란 국가가 운영하는 의무 가입 연금으로, 노후 최저 생활비를 보장하는 사회 안전망의 뼈대입니다. 이게 흔들리면 나머지 개인 준비가 아무리 탄탄해도 기초가 없는 집과 다름없습니다.
국민연금 연구원이 격년으로 실시하는 서베이에 따르면 서울 기준 적정 생활비는 부부 기준 약 340만 원 수준입니다. 그런데 이 금액이 연 4% 속도로 오르고 있습니다. 복리(複利)로 상승한다는 뜻이니, 여기서 복리란 이자에 또 이자가 붙는 방식으로 오늘의 340만 원이 18년 뒤엔 700만 원이 된다는 계산입니다. 지금 당장 350만 원이 적정 생활비라면, 20년 뒤 퇴직을 앞둔 분은 목표 소득을 700만 원으로 잡아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저는 이 숫자를 처음 접했을 때 솔직히 좀 멍했습니다.
결국 핵심은 하나입니다. 내 자산이 물가 상승률보다 느리게 늘면, 열심히 모으면서도 실질 구매력은 조용히 줄어드는 겁니다. 예금에만 의존하면 세금을 제한 실질 수익률이 물가를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1억 원을 10년 예금에 넣었을 때, 시뮬레이션 결과 세후 구매력이 오히려 약 390만 원 감소했다는 분석도 있었습니다.
- 국민연금 납입 기간이 짧다면 임의 가입이나 추후 납부 제도를 활용해 기간을 늘릴 것
- 중대 질병은 소득 단절과 지출 급증을 동시에 일으키는 '더블 펀치'이므로 건강 관리 자체가 자산 관리
- 집이 있다면 주택연금이라는 스페어 타이어가 생긴 셈이니 노후 설계에 포함할 것
- 자녀에게 자산을 이전할 때는 자신의 노후 소득이 먼저 확보된 뒤 순서를 정할 것
인적 자산과 연금 전략이 핵심이다
노후를 준비할 때 대부분은 금융 자산만 떠올립니다. 저도 한동안 그랬습니다. 그런데 제가 직접 수입을 따져보니, 지금 당장 1억 원을 10% 수익률로 굴려봤자 연 1,000만 원, 월 83만 원입니다. 그 수익률을 달성하는 것도 쉽지 않은 데다, 한 달 83만 원이 생활비를 해결해주지는 않습니다. 숫자가 이렇게 나오니 금융 자산 운용에만 매달리는 건 근본 해결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더 중요하게 봐야 할 것이 인적 자산(人的資産)입니다. 인적 자산이란 내 몸과 경험, 전문성에서 나오는 근로소득의 원천을 말합니다. 운전면허밖에 없는 문과 출신이라도 수십 년간 쌓인 업무 경험은 분명 무언가로 연결됩니다. 저는 이 부분을 너무 오래 방치했다고 생각합니다. 재취업 성공 요인을 분석한 연구들을 보면 전문성, 네트워크, 자격증, 눈높이 조정 이 네 가지가 공통적으로 꼽힙니다(출처: 한국노동연구원). 특히 이종 업종으로 이동할 때는 자격증이 전문성을 대신합니다.
60대 10년을 어떻게 보내느냐가 70대 이후 자산 규모를 결정한다는 분석도 인상적이었습니다. 5억 원의 금융 자산을 가진 사람이 60대에 근로소득으로 생활비를 충당하며 자산을 복리 운용하면 70세에 7억 4,000만 원이 됩니다. 반면 매년 4,000만 원씩 인출한 사람은 같은 기간 2억 원만 남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정말 예상 밖의 격차였습니다. 10년이라는 시간이 결국 101세까지 버티는 자산과 76세에 고갈되는 자산의 차이를 만드는 겁니다.
퇴직연금(退職年金) 운용도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퇴직연금이란 회사가 적립한 퇴직 급여를 근로자 명의 계좌에서 굴리는 제도입니다. DB형(확정급여형)은 최종 임금 기준으로 받는 구조이고, DC형(확정기여형)은 내가 직접 운용해야 합니다. 임금 상승 여력이 있는 분은 DB형이 유리하고, 그렇지 않다면 DC형으로 전환해 S&P 500 같은 해외 ETF를 연금 계좌 안에 담는 것이 세제 측면에서도 유리합니다. 연금 계좌 안에서는 배당소득이 과세 이연되고, 최종 인출 시 3.3~5.5%의 저율 분리과세가 적용됩니다.
주택 자산도 설계 안에 넣어야 합니다. 주택연금은 역모기지(Reverse Mortgage) 방식입니다. 역모기지란 집을 담보로 매월 일정액을 대출 형태로 수령하고, 사망 후 주택으로 상환하는 구조입니다. 대출이기 때문에 연금 소득세 걱정이 없습니다. 공시가 12억 원(시가 약 17억 원) 이하 주택이면 가입 가능하고, 두 채 합산도 됩니다. 집이 있는데 금융 자산이 부족하다면 이 자산을 노후 설계에서 빼놓는 건 자린고비처럼 굴비는 걸어두고 굶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50대 중반인데 지금부터 국민연금 준비해도 늦지 않나요?
A. 늦지 않습니다. 국민연금 홈페이지에서 추후 납부, 임의 가입, 연장 가입 세 가지 방법을 확인하면 납입 기간을 늘릴 수 있습니다. 60세 이후에도 신청만 하면 가입 기간을 연장할 수 있으니, 납입 공백이 있었다면 지금 바로 확인해보는 것이 먼저입니다.
Q. 특별한 기술이나 자격증이 없는데 재취업이 가능할까요?
A. 동종 업계로 이동할 때는 전문성과 네트워크가 핵심이고, 이종 업계로 넘어갈 때는 자격증과 눈높이 조정이 중요합니다. 손해사정인, 주택관리사, 산업안전관리사 같은 자격증은 50대에도 충분히 취득 가능하며, 이를 통해 새로운 현금 흐름을 만든 사례가 실제로 많습니다.
Q. 주택연금은 언제 가입하는 게 유리한가요?
A. 너무 일찍 가입하면 대출 이자가 복리로 쌓이는 기간이 길어져 월 수령액이 줄어듭니다. 다른 소득원으로 버틸 수 있다면 70세 전후까지 기다렸다가 가입하는 것이 수령액 측면에서 유리합니다. 주택연금은 '마지막 안전망'이라는 개념으로 접근하는 것이 현실적입니다.
Q. DB형 퇴직연금을 DC형으로 바꿔야 할까요?
A. 앞으로 임금이 꾸준히 오를 직장이라면 DB형이 유리합니다. 반면 임금 상승 여력이 낮거나 이직·퇴직 가능성이 있다면 DC형으로 전환해 직접 운용하는 쪽이 낫습니다. DC형이라면 연금 계좌 안에서 해외 ETF를 담아 과세 이연 혜택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을 권합니다.
결론
멘토도 없고 뚜렷한 커리어도 없는 상황에서 노후를 준비한다는 건 솔직히 막막합니다. 저도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그런데 정리하고 나니 한 가지는 분명해졌습니다. 금융 자산 수익률에만 매달리기 전에, 국민연금 납입 기간을 늘리고, 60대에도 어떤 방식으로든 일을 이어가고, 집을 노후 설계 안에 넣는 것. 이 세 가지가 먼저입니다.
자식에게 짐이 되지 않겠다는 마음이 지금 저를 움직이는 가장 큰 동력입니다. 스티브 잡스가 말한 것처럼, 지금 찍는 점들이 나중에 어떻게 연결될지는 모릅니다. 그래도 점을 찍는 일을 멈추지 않는 것, 그게 제가 오늘 할 수 있는 전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