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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극우 AfD 약진(AfD부상, 동서격차, 햇볕정책)

cocham1 2026. 9. 7. 17:13

목차


    아들과 정치 얘기를 끊은 지 꽤 됐습니다. 아들 말로는 친구들끼리도 서로 정치 얘기는 꺼내지 않는다고 합니다. 괜히 말 꺼냈다가 감정 상하는 것보다 차라리 침묵이 낫다는 거죠. 그런데 독일 동부 지역 지방의회 선거 결과를 접했을 때, 저는 반사적으로 한반도 생각이 먼저 났습니다. 통일 이후 36년이 지나도 여전히 이등 시민 취급을 받는다고 느끼는 사람이 70%에 달하는 사회, 그게 우리와 무관한 이야기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AfD 부상 — 극우 정당이 1위를 한 날

    2024년 9월, 독일 동부 3개 주에서 지방의회 선거가 치러졌습니다. 튀링겐, 작센, 브란덴부르크 모두 구 동독 지역입니다. 결과는 꽤 강렬했습니다. 튀링겐에서 AfD(독일을 위한 대안, Alternative für Deutschland)가 33% 득표로 1위를 차지했고, 작센에서는 2위, 브란덴부르크에서도 출구조사 기준으로 여당에 바짝 붙은 2위였습니다.그리고 2026년 9월 작센안할트 지역에서 또 한 번 AfD가 45%이상의 득표율을 가져갈 것으로 전망되고 있습니다.

    AfD는 흔히 네오나치 정당이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강경 민족주의 성향으로 분류됩니다. 튀링겐 승리를 이끈 비요른 회케는 홀로코스트 기념비를 "수치의 기념비"라 불렀고, 이민자를 "침략자"로 표현해 독일 혐오 발언 금지법 위반으로 두 차례 기소된 인물입니다. 유럽 내 극우 정당 연합체인 아이덴티티 앤 데모크라시(Identity and Democracy)조차 "너무 극단적"이라며 AfD의 가입을 거부했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짚어볼 게 있습니다. AfD가 처음부터 이런 정당이었냐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AfD는 2013년 유로존 부채 위기(Eurozone debt crisis) — 유럽 단일 통화권 내에서 재정 위기를 겪은 국가들을 구제하는 과정에서 독일 납세자의 부담이 커지자 이에 반발해 생겨난 정당입니다. 초창기에는 경제 보수주의 성향의 정당이었고, 창당자인 경제학자 베른트 루케는 2015년 정당이 반이민·반무슬림 노선으로 방향을 틀자 스스로 탈당했습니다.

    전환점은 2015년 난민 위기였습니다. 메르켈 총리의 난민 수용 결정 이후 AfD는 이민자 혐오, 반이슬람 기조를 전면에 내세우며 지지층을 끌어모았고, 2017년 연방의회에 12% 득표로 처음 입성했습니다. 이후 2021년에도 10%대를 유지하면서 주류 정당으로 자리를 굳혀가는 중입니다.

    • 2013년 창당: 유로존 부채 위기에 대한 반발로 출발한 경제 보수 정당
    • 2015년 전환: 난민 위기를 계기로 반이민·반이슬람 노선으로 급격히 이동
    • 2017년 연방의회 입성: 12% 득표, 이후 10%대 안정권 유지
    • 2024년 지방선거: 동부 3개 주에서 1~2위권 차지, 구 동독 지역 지지율 독보적
    요약: AfD는 경제 불만에서 출발했지만 난민 위기를 계기로 강경 민족주의 정당으로 변모했고, 2024년 지방선거에서 구 동독 지역을 중심으로 최고 성적을 기록했습니다.

     

    동서 격차 — 숫자로 보면 더 선명해집니다

    서독 지역에서 AfD 지지율은 15% 안팎에 머뭅니다. 그런데 구 동독 지역에서는 압도적 1위를 찍습니다. 같은 독일인데 왜 이렇게 다를까요. 저는 이 질문을 오래 붙들었습니다.

    표면적 이유는 경제 격차입니다. 1990년 통일 당시 서독의 1인당 GDP는 22,767유로였던 반면, 동독은 그 3분의 1에도 못 미치는 7,395유로였습니다. 통일 후 36년이 지난 현재, 베를린을 제외한 구 동독 지역의 1인당 GDP는 약 37,000유로로 올랐지만, 서독은 이미 50,000유로에 육박합니다(출처: 독일 연방통계청(Destatis)). 수치만 보면 동독이 많이 따라온 것 같지만, 격차는 여전히 큽니다.

    실업률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1994년 기준 서독 8.1%, 동독 14.8%였고, 격차는 이후에도 상당 기간 지속됐습니다. 특히 AfD가 1위를 한 튀링겐은 16개 연방주 중 경제적으로 가장 낙후된 지역으로 꼽힙니다.

    그런데 경제 격차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학자들도 같은 지적을 합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오시(Ossi)'라는 단어에 담긴 감정입니다. 오시는 동독 출신자를 가리키는 속어로, 비하의 뉘앙스가 짙습니다. 2020년 여론 조사에 따르면 브란덴부르크 주민의 59%, 작센 주민의 66%, 튀링겐 주민의 70%가 자신을 이등 시민으로 느낀다고 응답했습니다(출처: 독일 연방정치교육원(bpb)). AfD 지지자 사이에서는 그 비율이 튀링겐의 경우 86%까지 올라갑니다.

    구조적 차이도 있습니다. 서독은 냉전 기간 중 튀르키예 등에서 이민자를 대거 수용했고, 2019년 기준 서독 지역의 이민자 비율은 28.7%에 달합니다. 반면 구 동독 지역(베를린 제외)은 8.2%에 불과합니다. 다양한 인구 구성을 경험해본 사회와 그렇지 않은 사회는 이민자·소수자에 대한 태도 자체가 달리 형성될 수밖에 없습니다. 젊은이들과 여성들이 일자리를 찾아 서독으로 떠나면서 노령 인구 비율이 높아진 것도 이 지역에서 권위주의적 리더십에 대한 향수가 강한 이유 중 하나로 꼽힙니다. 여기에 코로나19 당시 반정부 시위가 가장 격렬하게 벌어진 곳이 작센이었다는 점도 우연이 아닙니다. 작센의 코로나19 사망률은 인구 10만 명당 969명으로 독일 전체에서 가장 높았습니다. 이는 연방정부의 정책에 대한 불신이 커지는 계기가 됐습니다.

    요약: 동독 지역의 AfD 강세는 경제 격차뿐 아니라 통일 이후 34년간 쌓인 이등 시민 감정, 낮은 이민자 비율, 노령화 구조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결과입니다.

     

    햇볕정책 — 우화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입니다

    아들에게 물었던 적이 있습니다. 북한이 경제적 어려움으로 중국의 지원을 받으면서 지하자원을 내어주고 있는데, 유사시 중국이 투자 지역 확보를 명분으로 군대를 보낸다면 어떻게 생각하냐고요. 아들의 대답은 명확했습니다. 북한과의 통일은 반대하지만, 중국 군대가 북한을 접수하는 것은 지켜볼 수 없다고요.

    제 생각에 그 대답은 절반만 맞습니다. 북한이 배고프다 애걸할 때는 모른 척하다가 중국이 가져가려 하니 그제야 안 된다고 하면 명분이 서질 않습니다. 독일의 사례가 보여주는 게 바로 이겁니다. 통일 전 서독 여론 조사에서 63%가 통일에 찬성했지만, 막상 통일 2개월 후 같은 조사에서는 33%로 반 토막 났습니다. 막연히 좋다고 생각하다가, 현실을 맞닥뜨리고 나서야 달라진 거죠.

    저는 대북 정책을 볼 때 항상 햇볕정책(Sunshine Policy)을 기준으로 삼아왔습니다. 햇볕정책이란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98년부터 추진한 대북 포용 정책으로, 이솝 우화에서 차용한 개념입니다. 강압이 아닌 온기로 북한의 문을 열자는 발상입니다. 단순한 우화처럼 들리지만 저는 이것이 실용적으로 가장 현실적인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진 것을 나눈다는 것이 두려운 이유는 뺏긴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자식 세대에게 기회를 물려준다는 관점으로 바뀌면, 마음이 달리 움직입니다. 제 경험상 이건 꽤 현실적인 감각입니다. 철천지 원수라 해도 수교하고 무역하고 사는 것이 국제 사회의 작동 방식입니다. 일본과 우리가 그렇게 합니다. 북한과 못 할 이유가 없습니다. 다만 구조적 개선 없는 현상 유지는, 독일 동부가 보여주듯, 결국 더 깊은 상처를 남깁니다. 대한민국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지금 당장 실질적인 물꼬를 여는 것입니다.

    요약: 독일의 통일 후유증은 경제 지원 없이 방치한 결과가 얼마나 오래 가는지를 보여줍니다. 한반도 통일의 기회는 지금 북한에 온기를 나누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AfD는 왜 서독보다 동독에서 훨씬 강한가요?

    A. 경제적 격차와 함께 통일 이후 30년 넘게 쌓인 이등 시민 감정이 복합적으로 작용합니다. 2020년 여론 조사에서 튀링겐 주민 70%가 자신을 이등 시민으로 느낀다고 응답했는데, AfD 지지자 사이에서는 그 비율이 86%까지 올라갑니다. 분노가 표에 그대로 반영된 결과입니다.

     

    Q. 독일 통일은 한반도 통일의 좋은 모델이 될 수 있나요?

    A. 참고는 되지만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렵습니다. 독일 통일 당시 동서독의 소득 격차는 약 3배였지만, 현재 남북한의 1인당 소득 격차는 30배 이상으로 추산됩니다. 경제적 간극뿐 아니라 정치·사회·문화적 이질감이 훨씬 크기 때문에, 독일보다 훨씬 오랜 준비와 단계적 접근이 필요합니다.

     

    Q. 햇볕정책은 실패한 거 아닌가요?

    A. 햇볕정책이 북한의 핵 개발을 막지 못했다는 비판은 타당합니다. 그러나 남북 교류가 가장 활발했던 시기에 이산가족 상봉, 개성공단 운영, 금강산 관광 등 실질적 성과도 있었습니다. 정책 자체의 한계보다는 상호 신뢰 구축 없이 교류만 추진한 방식의 문제로 보는 시각도 있고, 저는 방향 자체가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Q. BSW는 어떤 정당인가요?

    A. BSW(Bündnis Sahra Wagenknecht, 자라 바겐크네히트 동맹)는 공산주의 배경을 가진 자라 바겐크네히트가 2024년 창당한 좌파 민족주의 계열 정당입니다. 반이민 정책을 지지하면서도 사회복지 확대를 주장하는 독특한 노선으로, 2024년 동독 지역 선거에서 AfD와 함께 두드러진 성과를 냈습니다. 이념 스펙트럼의 양 극단이 동시에 득세했다는 점이 동독 지역 민심의 복잡함을 보여줍니다.

     

    결론

    독일의 사례를 들여다보면서 제가 가장 오래 머물렀던 생각은 이겁니다. 36년이 지나도 이등 시민 감정이 사라지지 않았다면, 그건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입니다. 서독이 동독을 흡수하면서 "우리가 해줬잖아"라는 무의식이 관계를 뒤틀어 놓았고, 그 결과가 AfD 33% 득표로 나타났습니다.

    우리가 북한을 대할 때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지금부터라도 관계를 다시 쌓아야 합니다. 현상 유지적 평화는 결국 더 큰 비용을 미래 세대에게 넘기는 일입니다. 저는 다음 선거에서도 대북 정책이 어떠하냐를 가장 먼저 볼 겁니다. 그 방향이 제 자식 세대의 선택지를 넓혀줄 거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0nZXu1cPSQ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