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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폰 가격이 평균 200달러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을 때, 솔직히 처음엔 또 엄살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런데 맥북과 아이패드가 이미 최대 300달러나 올랐다는 걸 확인하고 나서는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이건 단순한 가격 조정이 아닙니다. 세계 최고의 기업이 메모리 공급망에서 '을'이 된 과정을 들여다보면, 지금 반도체 시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가 보입니다.
인과응보 — 애플이 스스로 뿌린 씨앗
일반적으로 애플은 공급망을 정교하게 통제하는 기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번 사태를 보면서, 그 '통제력'이 사실은 상대의 약점을 이용한 갑질에 가까웠다는 걸 다시 한번 확인했습니다.
메모리 시장이 극심한 불황에 빠졌던 시기, 애플은 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을 상대로 대규모 선주문(Pre-order)을 넣었습니다. 여기서 선주문이란 제품 생산 전에 물량을 미리 확정하는 방식으로, 제조사 입장에서는 생산 계획의 근거가 됩니다. 그런데 막상 제품이 나오면 애플은 "비싸다"는 이유를 들어 구매를 철회했습니다. 제조사들은 잔뜩 만든 재고를 헐값에 털어야 했고, SK하이닉스는 7조 원이 넘는 역대 최대 적자를 기록했습니다. 삼성전자와 마이크론도 수조 원대 손실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마이크론 CEO 산제이 메로트라가 공개 인터뷰에서 "그건 당신이 자초한 일"이라고 정면으로 받아친 것은, 이 맥락을 알아야 이해가 됩니다. 업계 관계자들도 그 발언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을 겁니다. 저 역시 그 인터뷰 내용을 처음 접했을 때 예상 밖이었습니다. 이런 발언이 공개 석상에서 나올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힘의 균형이 뒤집혔다는 신호이기 때문입니다.
- 애플의 선주문 철회 → 삼성·SK·마이크론 대규모 악성 재고 발생
- SK하이닉스 역대 최대 적자 7조 원 이상, 삼성·마이크론도 수조 원대 손실
- AI 수요 폭발 이후 메모리 3사의 협상력 역전 — D램 사후 정산제 도입
D램 사후 정산제란, 납품 시점이 아니라 시장 가격이 오른 뒤 그 상승분을 추가로 청구하는 방식입니다. 부품 단가를 1원 단위로 통제하던 애플이 이제는 제조사가 부르는 가격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구조입니다. 하반기 아이폰 출시를 앞두고 25% 인상된 반도체 청구서를 받은 것은 그 결과입니다(출처: Reuters Technology).
슈퍼사이클 — 균열이 시작되는 지점
반도체 슈퍼사이클(Supercycle)이라는 말이 요즘 자주 나옵니다. 슈퍼사이클이란 수요가 공급을 압도적으로 초과하면서 가격이 장기간 상승 국면을 유지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지금 메모리 시장이 딱 그 상태입니다.
엔비디아를 비롯한 빅테크들이 AI 인프라 구축을 위해 고대역폭메모리(HBM)를 쓸어가면서, 공장 증설이 미처 따라가지 못한 제조사들의 범용 D램·낸드플래시까지 동반 품귀 상태가 됐습니다. 여기서 HBM이란 High Bandwidth Memory의 약자로, 기존 D램 대비 데이터 처리 속도가 수배에 달하는 AI 전용 고성능 메모리입니다. 삼성과 SK 입장에서는 이제 애플이 구매하든 말든 신경 쓸 여유가 없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 상황에서 더 눈여겨본 건 애플의 다음 행보입니다. 코너에 몰린 애플은 중국 메모리 업체 창신메모리(CXMT)를 대안으로 꺼내 들었습니다. 애플 매출의 25%를 차지하는 중국 시장에 한해, CXMT 칩을 탑재한 아이폰을 출시하게 해달라고 미국 정부에 로비 중입니다. 문제는 CXMT가 미국 국방부가 지정한 중국 군사기업 명단, 즉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다는 점입니다(출처: U.S. Department of Defense).
일반적으로 이런 로비는 원가 절감 목적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저는 그 해석이 조금 다르다고 봅니다. CXMT 가격이 메이저 3사보다 고작 5~10% 저렴한 수준이라면, 리스크를 감수할 만한 원가 이점이 아닙니다. 오히려 메모리 3사에 빼앗긴 주도권에 대한 압박용 카드로 읽히는 게 더 자연스럽습니다.
중국 반도체 — 배터리의 악몽이 다시 오는가
여기서 진짜 겁나는 얘기가 나옵니다. 제 경험상 기술 산업에서 "중국은 아직 멀었다"는 말은 거의 항상 5년 뒤에 틀렸음이 증명됩니다.
SMIC(중신궈지)는 미국의 반도체 수출 규제 속에서도 감시가 덜한 구형 범용 반도체 시장을 100% 자급자족 수준으로 끌어올리며, 삼성전자를 제치고 세계 파운드리 2위 자리까지 치고 올라왔습니다. 파운드리(Foundry)란 자체 설계 없이 외부 고객의 반도체를 위탁 생산하는 사업 모델을 말합니다. SMIC의 부상은 규제만으로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막을 수 없다는 현실을 보여줍니다.
CXMT의 움직임도 같은 패턴입니다. 지금은 범용 D램부터 시작하지만, 그 수익을 기반으로 HBM으로 올라오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불과 5~6년 만에 한국 배터리 3사가 CATL을 비롯한 중국 업체에 역전당한 것처럼, 저부가 범용 메모리를 캐시카우로 삼아 올라오는 구조가 반도체에서도 반복될 수 있습니다.
화웨이 상하이 R&D 센터에만 3만 명이 달하는 인력이 통신부터 반도체·AI·데이터센터까지 전 방위로 연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휴머노이드 로봇 분야에서는 체육관 같은 공간에 수백 명이 로봇과 짝을 지어 하루 10~20시간씩 동작 데이터를 찍어내는 공장이 중국 전역에 10곳이 넘는다고 합니다. 이 물량 공세는 반도체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한국의 답은 무엇일까요. 제가 보기엔 양적 증산 경쟁으로 가면 이미 진 게임입니다. 삼성과 SK가 살아남을 길은 HBM 같은 수직 초격차 기술과, 고객 맞춤형 메모리 파운드리 모델뿐입니다. 젠슨 황이 일찌감치 한국을 수차례 방문해 SK하이닉스와 혈맹을 맺은 것, 그리고 팀 쿡은 그렇게 하지 않은 것. 이 차이가 지금의 지형도를 만들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아이폰 17 가격이 진짜 200달러나 오르나요?
A. 2025년 하반기 아이폰 출시를 앞두고 반도체 공급사가 25% 인상된 청구서를 보낸 것은 사실입니다. 맥북과 아이패드가 이미 최대 300달러까지 인상된 점을 감안하면, 평균 200달러 인상 전망이 단순 과장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최종 소비자 가격은 환율·지역·모델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Q. CXMT(창신메모리)가 블랙리스트인데 애플이 정말 쓸 수 있나요?
A. 현재 애플은 미국 정부를 상대로 중국 판매용 아이폰에 한해 CXMT 칩 사용을 허가해 달라고 로비 중입니다. CXMT는 미국 국방부 지정 중국 군사기업 명단에 올라 있어 허가 가능성은 높지 않습니다. 다만 마이크론이 트럼프 측 계좌에 2억 5천만 달러를 투자하며 맞불 로비에 나선 것을 보면, 정치적 변수가 결과를 좌우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Q. D램 사후 정산제가 소비자한테도 영향을 주나요?
A. 직접적인 영향이 있습니다. D램 사후 정산제는 납품 이후 시장 가격이 오르면 그 차액을 추가로 청구하는 방식입니다. 제조사가 가격 결정권을 가져가는 이 구조 아래에서는, 반도체 가격 상승분이 고스란히 완성품 가격에 반영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실제로 맥북·아이패드 인상이 그 결과입니다.
Q. 한국 반도체가 중국한테 역전당할 수도 있나요?
A. 일반적으로 한국이 HBM 기술에서 앞서 있으니 괜찮다는 시각도 있지만, 저는 그 낙관이 위험하다고 봅니다. SMIC가 이미 파운드리 세계 2위에 오른 것처럼, 범용 D램·낸드에서 기반을 다진 뒤 HBM으로 올라오는 중국의 속도는 예상보다 빠를 수 있습니다. 배터리 산업의 전례를 감안하면, 지금 초격차 전략을 확실히 잡지 못하면 5~10년 뒤는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결론
이번 애플 메모리 대란은 단순한 부품 가격 분쟁이 아닙니다. 공급망에서 갑의 위치를 당연하게 여겼던 기업이 시장 구조가 바뀌는 순간 얼마나 빠르게 을로 전락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제가 이 상황을 처음 접했을 때 솔직히 꽤 긴 여운이 남았습니다. 자업자득이라는 말이 이렇게 구체적인 숫자로 증명되는 경우는 흔치 않으니까요.
애플이 CXMT라는 카드를 꺼내 든 것은 슈퍼사이클의 균열 가능성을 보여주는 신호입니다. 4~5년 뒤 중국이 범용 D램 시장 일부를 가져간다면, 그 출발점이 이 시기였다고 기억될 수 있습니다. 삼성과 SK하이닉스가 HBM 초격차와 맞춤형 파운드리 전략으로 방어선을 어떻게 구축하느냐가 앞으로 수년간 반도체 시장의 핵심 변수가 될 것입니다. 이 흐름이 궁금하신 분은 HBM 기술 동향과 SMIC·CXMT의 공정 수율 뉴스를 꾸준히 체크해 두시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