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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다는 일본 경제의 반전 (고용안정, 기업생존, 비정규직)

cocham1 2026. 8. 30. 15:42

목차


    1997년 IMF 외환위기 때 저는 직장을 잃었습니다. 그때 처음 들었던 단어가 '비정규직'이었고, 그 단어가 이후 제 삶에 얼마나 긴 그림자를 드리울지는 몰랐습니다. 일본도 비슷한 시련을 겪었지만, 그 이후의 경로가 달랐습니다. 지금 일본 경제는 '관리를 잘하는 60대'라는 표현이 있을 만큼, 늙었지만 무너지지 않는 구조를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일본고용

    고용안정이 경제 체감의 진짜 온도계다

    경제가 좋은지 나쁜지 판단할 때 저는 뉴스의 GDP 수치보다 주변 사람들의 표정을 먼저 봅니다. 1997년 겨울, 제 주변에서 직장을 잃은 사람들의 얼굴이 어떠했는지 아직도 선합니다. 그때 이후로 고용이란 숫자가 아니라 사람의 존엄과 연결된 문제라는 걸 몸으로 알게 됐습니다.

    일본 경제를 두고 좋다, 나쁘다 의견이 엇갈리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고용 지표를 먼저 보게 됩니다. 현재 일본은 경제학자들이 '완전고용(Full Employment)'이라고 부르는 상태에 가깝습니다. 완전고용이란 일할 의사와 능력이 있는 사람 대부분이 직장을 가진 상태로, 실업률이 구조적 마찰적 수준인 약 3% 내외로 유지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일본의 현재 실업률이 바로 그 수준입니다(출처: 일본 총무성 통계국).

    2013년부터 2025년까지 일본은 인구가 134만 명 줄었음에도 정규직 일자리는 411만 개가 늘었습니다. 인구가 줄어드는 나라에서 정규직이 400만 개 넘게 증가했다는 건, 단순한 경기 회복이 아닙니다. 은둔형 외톨이, 경력단절 여성, 조기 은퇴자들이 노동 시장으로 나왔다는 신호입니다. 고용이 살아나면 자살률이 떨어지고 사회 전반이 안정된다는 걸, 일본은 이미 경험으로 증명했습니다.

    요약: 일본은 인구 감소에도 정규직이 411만 개 늘며 완전고용에 근접한 상태로, 고용안정이 사회 전반의 안정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기업생존의 비결은 '진화'였다

    제가 젊을 때 소니, 도시바, 샤프는 신화 같은 이름이었습니다. 그 기업들이 하나씩 무너지는 걸 지켜보면서, 한때 일본 내에서 "소니를 차라리 애플에 팔자"는 말이 진지하게 나올 만큼 상황이 심각했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그런데 소니는 팔리지 않았고, 대신 바뀌었습니다.

    일본 기업들의 변화를 한 단어로 정리하면 '흑자 구조조정'입니다. 흑자 구조조정이란 지금 당장 이익을 내고 있어도 5~10년 뒤 경쟁력이 없다고 판단되는 사업부를 먼저 정리하는 전략입니다. 쉽게 말해, 잘 팔리더라도 미래에 중국·한국 기업에 잠식될 시장이라면 먼저 손을 떼는 겁니다. 소니가 TV·가전 사업을 접고 반도체 이미지센서와 엔터테인먼트에 집중한 것이 바로 그 예입니다.

    아지노모토라는 조미료 회사의 사례는 저도 처음 들었을 때 반신반의했습니다. 식품 회사가 반도체 절연체 시장의 95%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는 게 쉽게 믿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음식을 만드는 화학 기술을 반도체 제조 공정에 응용한 것인데, 최첨단 반도체는 아지노모토의 절연체 없이는 생산이 불가능할 정도라고 합니다. 후지 필름은 이름조차 바꾸지 않은 채 바이오·화장품 기업으로 탈바꿈했습니다. 이름만 필름 회사이지 지금의 주력 사업은 전혀 다른 영역입니다.

    • 소니: 가전·TV 철수 → 반도체 이미지센서·엔터테인먼트 집중
    • 아지노모토: 식품 화학 기술 → 반도체 절연체 시장 95% 점유
    • 후지 필름: 필름 사업 축소 → 바이오·화장품 신사업 전환
    • 공통점: 국내 시장 한계 인식 → 해외 생산·판매 비중 확대

    일본의 성공한 기업인들이 인터뷰나 자서전에서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것이 '긴장감'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1등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무너진다는 걸 뼈저리게 배운 세대의 목소리입니다. 영업 이익과 시가총액이 사상 최대를 기록하는 지금도, 그 긴장감을 놓치면 안 된다고 반복하는 이유가 있는 겁니다.

    요약: 일본 기업들은 흑자 구조조정과 해외 진출로 살아남았으며, 그 과정에서 공통된 생존 동력은 '긴장감을 잃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비정규직, 제도는 있는데 사람이 없다

    제가 IMF 이후 비정규직 제도가 도입되는 걸 지켜본 세대입니다. 당시 고용주 입장에서는 유연한 인력 운용이 가능해졌지만, 노동자 입장에서는 2년마다 잘리는 구조가 고착됐습니다. 차별 금지 조항이 시행규칙에 있다지만, 제가 보아온 현장은 달랐습니다. 정규직 직원 입장에서 곧 나갈 비정규직에게 핵심 업무를 맡기기가 망설여지는 건 인지상정입니다. 법이 있어도 구조가 차별을 만드는 겁니다.

    일본은 다른 선택을 했습니다. 20대에게 정규직을 우선 배분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된 것입니다. 이것이 단순한 온정 정책처럼 보일 수 있는데, 저는 경제적 계산이 깔려 있다고 봅니다. 취업 빙하기 때 20대에 일자리를 얻지 못한 사람들이 30대, 40대, 50대가 되어도 은둔형 외톨이(히키코모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결국 국가가 복지 재원으로 감당해야 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네덜란드는 이미 오래전에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뤘습니다. 임금 인상과 고용 안정을 두고 노동쟁의가 심화되자, 정부·기업·노조가 함께 결단을 내렸습니다. 비정규직을 유지하되 시간당 임금을 정규직의 2배 수준으로 책정하는 방식으로 보호 장치를 만들었습니다. 이를 '바세나르 협약(Wassenaar Agreement)'이라고 부르는데, 여기서 바세나르 협약이란 1982년 네덜란드에서 정부·사용자·노동자 3자가 임금 절제와 고용 확대를 맞바꾼 사회적 대타협을 의미합니다(출처: OECD 고용노동 통계). 비정규직이라는 제도는 같아도, 그 안에 사람을 보호하는 장치가 있느냐 없느냐가 결정적으로 다릅니다. 제 경험상 한국은 아직 그 장치가 너무 허약합니다.

    요약: 일본은 20대 정규직 우선 채용이라는 사회적 합의로 청년 고용을 지키고 있으며, 한국의 비정규직 제도는 차별 금지 조항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는 구조적 차별이 여전합니다.

     

    엔저와 재정정책, 잘 되던 경제에 생긴 균열

    일본 경제가 전반적으로 안정됐다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최근 흐름에서 한 가지 불안한 지점을 발견합니다. 일본 정부가 드디어 기초 재정 수지 흑자를 달성할 수 있는 시점에 도달했음에도, 재정 건전화 목표를 사실상 포기하고 확장 재정으로 돌아선 것입니다.

    기초 재정 수지(Primary Balance)란 국채 이자나 원금 상환을 제외하고, 정부가 걷은 세금만으로 정부 지출을 감당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입니다. 쉽게 말해 '빌린 돈 갚는 것 빼고, 내 월급으로 내 지출을 감당할 수 있냐'는 계산입니다. 일본은 오랫동안 이것이 적자였는데, 기업 실적 개선으로 법인세 수입이 늘며 올해 처음 흑자 전환 가능성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에 정부가 오히려 지출을 늘리겠다고 나선 겁니다.

    그 결과는 시장이 먼저 반응했습니다. 2026년 들어 엔화와 일본 국채가 동시에 매도되는 흐름이 발생했고, 엔저(円低)가 심화됐습니다. 엔저란 엔화 가치가 하락하는 현상으로, 수입 물가가 오르고 에너지·원자재 비용이 증가하는 부작용이 따릅니다. 일본은 실제로 에너지와 원자재 상당 부분을 해외에서 수입하기 때문에, 엔저는 기업보다 일반 소비자에게 직격탄이 됩니다. 마트에서 장을 보면 숫자로는 3~4% 물가 상승이지만, 체감으로는 훨씬 크게 느껴진다는 일본 거주자들의 반응이 이해되는 이유입니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타이밍입니다. 경제가 어려울 때 재정을 풀어 경기를 떠받치는 것은 교과서적으로도 옳습니다. 하지만 지금 일본은 법인 기업 영업 이익이 사상 최대이고 고용도 견조한 상황입니다. 이 시점에 굳이 재정 건전성을 내려놓는 것은, 회복세를 스스로 흔드는 처방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요약: 일본 정부의 확장 재정 선언은 엔화와 국채의 동시 매도를 촉발했으며, 경제가 가장 안정된 시점에 재정 건전화를 포기한 타이밍 자체가 문제로 지적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일본 경제가 좋다는데 왜 엔저가 계속되는 건가요?

    A. 기업 실적과 환율은 반드시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일본 금리가 미국 등 다른 나라에 비해 여전히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고, 최근 정부의 확장 재정 방침이 엔화 매도 심리를 자극하면서 엔저가 심화됐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기업은 살아났지만 통화 정책과 재정 정책이 엔화를 끌어내리고 있다는 구조적 문제가 있습니다.

     

    Q. 한국 비정규직과 일본 비정규직은 뭐가 다른가요?

    A. 제도 자체의 존재는 양국 모두 비슷합니다. 다만 일본은 20대에게 정규직을 우선 배분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돼 있고, 비정규직 비율을 점차 줄이는 방향으로 기업들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한국은 차별 금지 조항이 있지만 현장에서 구조적 차별이 여전하고, 2년 계약 만료 후 퇴직이 반복되는 문제가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고 봅니다.

     

    Q. 일본 기업 시가총액이 한국보다 크다는데, 어느 정도 차이가 있나요?

    A. 세계 1,000대 기업 안에 드는 회사 수를 비교하면 한국은 20개, 일본은 71개로 약 3.5배 차이가 납니다. 세계 10,000대 기준으로는 한국 137개, 일본 679개입니다. 일본이 GDP 대비 기업 수가 압도적으로 많은 편이고, 이것이 광범위한 고용 창출로 이어진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Q. 일본이 '관리 잘하는 60대'라는 표현은 무슨 의미인가요?

    A. 고령화와 인구 감소로 경제 체력 자체는 약해졌지만, 기업 구조조정과 고용 유지 정책으로 당장 쓰러지지 않게 관리되고 있다는 뜻입니다. 고지혈증이나 당뇨가 있더라도 관리를 잘하면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것처럼, 외부 충격이 생기면 취약해질 수 있지만 지금 당장은 안정적이라는 표현입니다.

     

    결론

    IMF 때 직장을 잃어봤기 때문에 저는 고용이 얼마나 사람을 지탱하는 힘인지 압니다. 일본이 30년의 침체 끝에 건져 올린 가장 중요한 교훈도 같은 자리에 있었습니다. 기업이 살아야 고용이 살고, 고용이 살아야 사회가 안정된다는 것. 그 순서를 지키기 위해 흑자 구조조정이라는 고통스러운 선택을 했고, 긴장감을 잃지 않으려는 기업 문화가 자리잡혔습니다.

    한국도 배울 지점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20대에게 정규직을 먼저 주려는 일본의 사회적 합의는, 선심성 정책이 아니라 미래 사회 부담을 줄이는 장기 투자입니다. 국무회의에서 차별 금지를 선언하는 것과 현장에서 실질적인 구조 변화를 만드는 것은 전혀 다른 일입니다. 제 경험상 제도는 사람이 만들지만, 현장은 구조가 바꿉니다. 그 구조를 바꾸는 데 더 진지한 노력이 필요할 때입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zU4I1GQm9s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