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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야 투기야 (변동성, 레버리지 ETF, 코리아 디스카운트)

cocham1 2026. 8. 12. 00:33

목차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라는 세계 최고 수준의 반도체 기업을 품고 있는 나라의 증시가, 왜 글로벌 기관투자자들에게 "싸지만 못 사겠다"는 시장이 됐을까요. 저는 1999년 닷컴버블 때 빚까지 내서 주식을 샀다가 고스란히 카드값으로 남긴 경험이 있습니다. 그때와 지금의 구조가 섬뜩할 만큼 닮아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이 주제를 그냥 지나치기가 어려웠습니다.

     

    성장

    변동성이 가치를 이겼다 — 블룸버그가 실제로 말한 것

    블룸버그 오피니언의 칼럼니스트 슐리언 레이가 8월 4일 한국 증시를 향해 "투자 부적격(uninvestible)"이라는 표현을 꺼냈을 때, 한국 금융위원회는 즉각 반박 보도자료를 냈습니다. 요지는 "경제 펀더멘탈이 견조하다"는 것이었습니다. 2분기 성장률 전년 동기 대비 3.7%, 5월 경상수지 386억 달러 흑자, 코스피 상장사 이익 전망치가 644조 원에서 978조 원으로 꾸준히 상향 조정되고 있다는 수치도 함께 제시됐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장면을 보면서 양 쪽이 완전히 다른 질문에 답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슐리언 레이가 문제 삼은 건 한국 경제의 체력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지적한 핵심은 시장 구조였습니다. 단 27거래일 만에 약 40%가 급락하는 변동성, 단일 종목 레버리지 ETF가 거래대금의 33%를 차지하는 구조, 국민연금이 자체 규정(보유 한도 15%)을 넘어 20.8%까지 보유 비중을 장중에 상향 조정한 정책 개입, 이 세 가지가 비판의 실제 근거였습니다.

    여기서 레버리지 ETF(Exchange Traded Fund)란 기초 자산의 일간 수익률을 2배 혹은 그 이상으로 추종하는 상장지수펀드를 말합니다. 쉽게 말해 기초 자산이 1% 오르면 2%를 먹지만, 1% 내리면 2%를 잃는 구조입니다. 패시브 매매 방식이라 알고리즘이 기계적으로 리밸런싱(rebalancing)을 실행합니다. 리밸런싱이란 포트폴리오 비중이 목표치에서 벗어날 때 자동으로 사거나 파는 것인데, 하락장에서는 이 과정이 추가 매도를 부르는 악순환으로 이어집니다. 골드만삭스 분석에 따르면 SK하이닉스가 5% 변동할 때 단일 종목 레버리지 ETF 리밸런싱 물량이 해당 주식 하루 거래량의 40%에 달했다는 추정치가 나왔을 정도입니다.

    • 블룸버그 비판의 핵심: 경제 체력이 아닌 시장 구조 문제
    • 27거래일 만에 약 40% 급락 — 2015년 중국 증시 폭락과 유사한 변동성 패턴
    • 단일 종목 레버리지 ETF 거래 비중이 코스피 전체 거래대금의 최대 33.4% 차지
    • SK하이닉스 거래량의 40%를 레버리지 ETF 리밸런싱 물량이 차지(골드만삭스 추정)
    • 강제 청산 계좌 중 62%가 35세 미만 청년 투자자

    금융위가 반박한 "변동성은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다"는 주장도 틀린 말은 아닙니다. 실제로 마이크론이 연율화 변동성 123%, 샌디스크 131%로 삼성전자(96%)보다 높습니다. 그러나 개별 종목의 변동성과 코스피 지수 전체가 단일 종목 레버리지에 흔들리는 구조적 문제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입니다. 금융위는 질문에 대해 엉뚱한 대답을 훌륭하게 한 셈입니다.

    요약: 블룸버그의 비판은 한국 경제 체력이 아니라 레버리지 ETF가 만들어낸 시장 구조의 변동성을 겨냥했으며, 금융위의 반박은 핵심을 비껴갔습니다.

     

    레버리지 ETF가 꼬리가 된 날 — 저는 1999년을 떠올렸습니다

    1999년에 저는 빚을 내서 주식을 샀습니다. 화장지 만드는 회사가 사명 끝에 '.com'을 붙이기만 해도 주가가 뛰던 시절이었습니다. 사기만 하면 올랐고, 안 사면 나만 손해보는 것 같은 분위기였습니다. 결과는 카드값만 남았습니다. 그 이후 제가 개인적으로 절대 하지 않게 된 것이 하나 있다면 빚을 내서 주식을 사는 것입니다. 원금이 조금이라도 깎이면 압박감을 못 견디고 손절하게 되고, 장기투자를 못 하면서 샀다 팔았다를 반복하다 결국 증권사에 수수료만 가져다 바치는 꼴이 됩니다.

    이번 코스피 급락 과정이 그때와 다르지 않아 보였습니다. 5월 27일 단일 종목 레버리지 ETF가 출시됐을 때 시가총액은 4.4조 원이었는데, 7월 15일 기준 11.9조 원으로 불어났습니다. 거래대금도 같은 기간 10.4조 원에서 13조 원으로 급증했습니다. 개인 투자자들, 특히 청년층이 레버리지 상품에 몰렸고, 강제 청산이 시작되자 추가 하락을 불렀습니다.

    여기서 마진콜(margin call)이라는 개념이 등장합니다. 마진콜이란 레버리지 투자에서 담보 자산 가치가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지면 증권사가 강제로 해당 포지션을 청산하는 것을 말합니다. 개인 투자자가 "버티겠다"고 마음먹어도 시스템이 먼저 팔아버립니다. 그 매도 물량이 다시 주가를 누르고, 다음 투자자의 마진콜을 유발하는 연쇄반응이 일어납니다. 이번에도 정확히 그 메커니즘대로 움직였습니다.

    더 근본적인 구조 문제도 있었습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코스피 시가총액 비중이 4월 말 41%에서 7월에는 52%까지 올라갔습니다. 코스피가 수천 개 기업으로 구성된 지수라지만, 사실상 두 반도체 종목에 대한 집중 배팅장이 된 것입니다. 여기에 단일 종목 레버리지 ETF가 더해지자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구조가 완성됐습니다. 정책의 취지가 좋았다고 해도 — 해외로 나가는 레버리지 투자 수요를 국내 제도권으로 흡수하려 했다는 취지는 이해합니다 — 시장 충격 관리에 실패한 것은 사실입니다. 아쉬운 것은 당국자들이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던 리스크를 사전에 막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애써 모은 목돈이 누군가의 쌈짓돈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전문가로서의 책무 아닐까요.

    요약: 레버리지 ETF의 마진콜 연쇄 구조와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52% 지수 편중이 맞물려 코스피를 투기장으로 변질시켰습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 이제는 두 가지가 됐습니다

    과거 코리아 디스카운트(Korea Discount)는 주로 거버넌스 문제에서 비롯됐습니다. 거버넌스 디스카운트란 대주주 중심의 독단적 의사결정, 낮은 배당성향, 소액주주 권리 보호 미흡, 순환출자 구조 등으로 기업이 실제 가치보다 낮게 평가받는 현상을 말합니다. 주가수익비율(PER)이 5.5배까지 떨어진 것이 그 단면입니다. PER이란 주가를 주당순이익으로 나눈 값으로, 숫자가 낮을수록 기업이 벌어들이는 이익에 비해 주가가 저평가돼 있다는 의미입니다. 10년 만에 최저 수준이라는 건 그만큼 시장이 외면받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번 사태를 거치면서 거버넌스 디스카운트에 시장 구조 디스카운트가 추가됐습니다. 저는 이것이 더 심각하다고 봅니다. 거버넌스 문제는 오랜 숙제였고 글로벌 투자자들도 이미 할인율에 반영해 왔습니다. 그런데 시장 구조 디스카운트는 새로운 경고 신호입니다. 유럽계 자산운용사인 스위스의 픽테(Pictet), 네덜란드의 로베코(Robeco), 영국의 이스트 스프링(Eastspring) 같은 아시아 특화 기관들이 PER 5.5배라는 역사적 저평가 상황에서도 적극적인 매수에 나서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단순히 저평가 상태가 아니라는 신호입니다(출처: Bloomberg Opinion).

    드라마 속 궁예가 사람의 마음속을 들여다본다는 설정처럼, 글로벌 기관투자자들은 한국 금융당국의 해명 자료를 보고도 구조의 본질을 그대로 꿰뚫어 봅니다. 페이션트 캐피탈(patient capital), 즉 장기적인 관점에서 인내심을 갖고 운용하는 장기 자본은 펀더멘탈이 좋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시장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포트폴리오 리스크 관리가 가능해야 합니다. 하루에 8% 이상 빠지는 서킷 브레이커가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자주 발동되고, 변동성이 예측 불가능한 시장에서는 벤치마크 추적 오차 관리도, 고객 환매 대응도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싸도 못 들어온다는 겁니다.

    현재 금융당국이 신규 상품 상장 잠정 중단, 광고 금지, 증거금 3천만 원 이상 요건 강화, 대용증권 미인정 등의 후속 조치를 단행한 결과, 단일 종목 레버리지 ETF의 코스피 거래대금 비중은 최고 33.4%에서 8월 1일 기준 5.4%로 크게 줄었습니다. 방향은 맞습니다. 그러나 상처는 이미 시장의 신뢰 안에 새겨졌습니다. 한국 증시가 AI 반도체 호황이라는 좋은 연료를 자본시장의 깊이를 키우는 엔진에 넣지 않고, 레버리지 화약통에 쏟아부은 결과라는 평가는 지금도 유효합니다. 기업의 경쟁력이 선진국 수준인데 시장 구조가 그것을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되어서는 안 됩니다.

    요약: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거버넌스 문제에서 시장 구조 문제로까지 확장됐으며, 글로벌 장기 자본이 외면하는 핵심 이유는 변동성 통제 불가능성에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블룸버그가 한국 증시를 중국과 비교한 근거가 뭔가요?

    A. 경제 펀더멘탈이 아니라 시장 행태의 유사성 때문입니다. 정책과 시장이 서로 맞물려 흔들리는 구조, 지수 쏠림, 레버리지 상품이 변동성을 증폭시키는 패턴이 2015년 중국 증시 폭락 때와 비슷하다는 것입니다. 중국과 달리 한국은 법치 투명성, 회계 투명성, 글로벌 공급망 지위 모든 면에서 우월하기 때문에, 이런 비교 자체가 나온다는 사실이 한국 정부로서는 더 뼈아픈 경고입니다.

     

    Q. 단일 종목 레버리지 ETF는 왜 이렇게 위험한 건가요?

    A. 개별 종목에 레버리지를 붙이면 해당 종목이 지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클수록 지수 전체가 흔들립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코스피 시가총액의 52%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이 두 종목에 레버리지 ETF가 대규모로 붙으면, 알고리즘 리밸런싱 과정에서 생기는 기계적 매도가 지수 전체를 끌어내립니다.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구조가 되는 겁니다.

     

    Q.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려면 뭐가 달라져야 하나요?

    A. 배당성향 제고, 자사주 소각 확대, ROE(자기자본이익률) 목표 중심의 경영, 이사회 독립성 강화, 소액주주 권리 보호 강화가 거버넌스 측면의 과제입니다. 시장 구조 측면에서는 단기 투기 자금이 아니라 페이션트 캐피탈이 들어올 수 있도록 제도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 핵심입니다. 하루아침에 규정이 바뀌는 시장에 장기 자본은 들어오지 않습니다.

     

    Q. 지금 코스피가 PER 5.5배면 사야 하는 거 아닌가요?

    A. 저평가가 맞다는 것과 지금 당장 사기에 적합한 시장이라는 것은 다른 이야기입니다. 글로벌 기관투자자들이 픽테, 로베코, 이스트스프링조차 적극적 매수에 나서지 않는 이유가 바로 변동성 리스크 때문입니다. 개인 투자자라면 레버리지는 철저히 피하고, 지수 전체보다 비반도체 성장주를 분산해서 접근하는 것이 현실적입니다. 시장 구조 개선이 데이터로 확인될 때까지 신중함이 필요합니다.

     

    결론

    주식 시장은 경제의 온도계이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로 국가 신뢰를 측정하는 기계입니다. 한국 경제의 체력이 나쁜 것이 아닙니다. 방산, 조선, 배터리, AI 인프라, 반도체로 이어지는 공급망은 세계가 필요로 하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그 좋은 기업들이 만들어내는 가치가 시장 구조의 왜곡 때문에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안타깝습니다.

    저는 1999년의 경험 이후 레버리지 투자를 하지 않게 됐습니다. 그 원칙은 지금도 유효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한국 자본시장이 10년, 20년의 로드맵을 갖고 시장 구조를 바꿔나가기를 바랍니다. 단기 조치를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예측 가능한 제도 안에서 글로벌 장기 자본이 신뢰를 갖고 들어올 수 있는 시장으로 바뀌는 것 — 그것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끝내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저는 봅니다. 우리 투자자들도 기업 밸류업이 구호에 그치는지, 배당과 자사주 소각으로 실제 숫자에 나타나는지를 주주로서 꼼꼼히 확인해야 할 시점입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TKDwmsA94sw